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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새롭게 피어남이여 <화림원 이야기> 능종能宗 . 동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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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성심 작성일23-05-15 21:54 조회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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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 새롭게 피어남이여 <화림원 이야기> 능종能宗. 동화사 주지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동장군의 기세에 잔뜩 움츠렸던 사람들도 기를 펴고 새봄 맞이를 합니다. 모든 생명들도 기지개를 펴고 한해의 살림살이를 준비합니다. 모든 것이 따사로운 햇볕의 덕분입니다.


  팔공총림 동화사에도 다사로움이 느껴집니다. 지난 2월 7일 팔공총림에서는 팔공총림 제1대 방장 진제 법원 종정예하에 이어서 팔공총림 제2대 방장 후보자로 임당 의현대종사 큰스님을 모셨습니다. 대중 스님들의 정진과 불자님들의 정성어린 수행의 힘이 바탕이 되어 교구의 봄바람이 일 것입니다. 

  금년은 윤 2월이 있어 윤달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업장을 참회하는 많은 불사가 봉행됩니다. 보살계 수계와 예수재 그리고 조상님들의 천도를 기원하는 영산재 등 입니다.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예수재豫修齋는 일찍이 고려 시대부터 널리 행해졌습니다. 생전에 자신의 49재 의식을 미리 닦는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윤월이 있는 해에는 전국 사원을 막론하고 거의가 생전예수재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예금豫金이 장래를 대비하는 의미가 있듯 예수재도 사후의 세계를 준비한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과 사는 늘 함께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생은 죽음을 동반하고 죽음은 생을 몰고 와서 생사윤회가 되풀이됩니다. 죽음을 버린 생만을 취할 수 없고 생이 없는 죽음도 취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나 생을 추구하는 죽음을 멀리합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생이 없는 멸이 없고 멸이 없는 생이 없습니다. 산다는 말은 곧 죽는다는 말과 통합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바라볼 때 생생하게 살았던 어제는 사라졌습니다.


  생사는 본래 중생의 번뇌인 무명無明을 따라 연기緣起된 것이니 그 성품이 공입니다. 생이라 하나 곧 무생無生[生本無生]이요,  멸했다고 하나, 멸본무멸[滅本無滅]이라, 생과 죽음의 독자적 실체는 없습니다. 

  마음을 닦아 생사의 근본을 알면 일체 법이 뿌리 없음을 깨닫고 모든 집착과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참으로 자유 자재하게 삶을 펼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고정된 바가 없기에 잘못 쓰면 좋지 못한 삼악도의 세계로 향하여 갖가지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잘 닦아서 깨닫게 되면 불보살의 세계로까지 나아갈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마음은 무한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일체중생에게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성품佛性이 있다 함은 이러한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유마경』「불도품」에서 '여래의 종자는 무엇이냐'는 유마의 질문에 문수보살은 '무명과 애착이 종자가 되고, 탐진치貪嗔癡의 마음이 종자가 되며, 일체번뇌가 모두 부처의 종자 곧 불성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그 이유로 '높은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못하고, 질척한 진흙에 자라며, 허공에는 씨앗이 싹트지 못하지만 썩고 거름끼 있는 땅에 심어야 무성한 것처럼, 번뇌가 여래의 종자인 줄을 알라, 거칠고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훌륭한 보배를 얻지 못함과 같이 번뇌의 바다에 들지 않고는 지혜 보배를 얻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조계종 13 · 14대 종정이신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이신 진제眞際 법원法遠 예하계서도 "부처님과 조사는 다툼이 없거늘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하는구나.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법령을 전할 것도 없고, 세상이 깨끗한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佛祖場中不展 後人剛地起嚆訛 道奉不傳天子令 時淸休唱太平歌)"라고 하시어 불이不二의 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생의 마음이 환한 깨달음으로 환원 될 수 있는 가변성에서 우리는 불성을 봅니다. 쌀에 밥은 없지만 인연을 만나면 밥이나 떡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유도 유산균이나 식초 나아가 술로도 변화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혹한 중생의 마음, 지옥 같은 나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인연에 따라 깨달음의 주인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 법 만남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땅속에 묻힌 광석은 눈 밝은 이의 연마 과정을 거쳐야 빛나는 보석으로 탄생됩니다. 

  소질과 능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과 실천의 의지 그리고 불굴의 정진이 따라야 합니다.


  부처님은 축생도 마음이 변화되어 어느 생에는 깨달음의 길에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모든 생명의 근원적으로 평등하여 존엄한 존재가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함부로 결정짓고 한정 지으면 안 됩니다. 죄 많은 업보 중생이라는 정해진 실체가 있다면 결코 성불의 길에 들 수 없습니다.


 지금 아무리 답답하고 괴롭다 해도 그 속에 지혜의 종자가 빛나고 있으니 그 인연을 잘 살려서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재 등 불교의 모든 법요 의식儀式에 담겨있는 그 한 소식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들이 새봄을 맞아 새롭게 태어나기를 축원드립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는 월간 八公禪門   202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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